불교신문 | 사경(四更) / 서정주
본문
사경(四更)
서정주
이 고요에
묻은
나의 손때를
누군가
소리 없이
씻어 헤우고
그 씻긴 자리
새로
벙그는
새벽
지샐 녘
난초 한 송이
사경(四更)은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의 시간입니다. 사위가 고요한 때에 시인은 홀로 앉아 있습니다. 매우 깨끗한 고요가 시인의 손때를, 더럽게 물든 몸과 마음을 맑게 씻겨줍니다. 순수한 상태로 회복시켜줍니다. 그러한 때에 난초 한 송이가 벙그는 것을 문득 발견합니다. 어린 난초의 꽃봉오리에 꽃을 피우기 위한 망울이 생겨나듯이 고요가 곧 터질듯 꽃망울을 맺는 것을 목격합니다. 극도로 안정된 상태로 수심(修心)을 했기 때문에 그 사경의 시간 끝에서 난초가 새로이 벙그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시를 서정주 시인의 시 ‘난초’와 마주 놓고 읽어도 좋습니다. 시인은 “하늘이/ 하도나/고요하시니// 난초는/ 궁금해/ 꽃 피는 거라”라고 썼습니다. 역시 상등품(上等品)의 시입니다.
[불교신문3151호/2015년11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