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 첫사랑 / 고영민
본문
첫사랑
고영민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봄날 저녁이었다
그녀의 집 대문 앞에
빈 스티로폼 박스가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밤새 그리 뒹굴 것 같아
커다란 돌멩이 하나 주워와
그 안에
넣어주었다
가슴속으로 첫사랑의 열병(熱病)을 앓던 시인은 어느 봄날 저녁 사랑하는 그녀의 집 대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는 바람처럼. 그녀의 집 주위를 맴돌던 시인의 눈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빈 스티로폼 박스가 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애타는 생각으로 매일 밤을 뒤척이는 자신처럼 빈 스티로폼 박스도 밤새 뒹굴 것만 같아 스티로폼 박스 안에 돌멩이를 가만히 넣어줍니다. 방황하는 마음을 눌러 앉혀 평온과 안정을 얻고자 그리 했을 것입니다. 서정주 시인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해서 “산에 가서 산돌을 줏어다가/ 국화밭에 놓아두곤/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다고 썼는데, 첫사랑의 때는 감미롭고 애틋한 때이고, 또 그 기억은 문득문득 되살아나 우리를 다시 설레게 합니다.
[불교신문3153호/2015년11월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