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 ‘문화독립투사’ 정신 잇는 뜻 깊은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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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필 선생이 일제 강점기
지켜낸 성보 등 문화재 모아
지난해부터 진행하는 문화전
5번째 기획으로 대장정 회향
겸재 정선 등 90여점 전시
선조들 삶의 지혜 엿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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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문화재단 주최 ‘간송문화전’의 마지막 기획인 5부 ‘화훼영모-자연을 품다’가 2016년 3월27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린다. 사진은 김홍도 작 ‘황묘농접’.사진제공=간송미술문화재단 |
일제치하에서 불교성보를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 이러한 ‘문화 독립투사’의 정신을 계승해 설립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사부대중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간송문화전’이 다섯 번째 전시회를 끝으로 대단원에 막을 내려 주목된다.
지난 10월23일 개막해 오는 2016년 3월27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리는 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자연을 품다’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3월 말 1부 ‘간송 전형필’(지난해 3~6월)로 시작으로 2부 ‘보화각’(7~9월), 3부 ‘진경산수화-우리 강산 우리 그림’(12월~올해 5월), 4부 ‘매난국죽-선비의 향기’(지난 6~10월)에 이어 열린 이번 전시는 간송문화전의 마지막 순서다. 1, 2부 전시에는 25만 명, 3, 4부의 경우 10개월 동안 15만 명이 다녀가는 등 관객동원에도 성공을 거뒀다.
꽃과 풀, 날짐승과 길짐승을 일컫는 말로 동식물을 소재로 한 그림인 ‘화훼영모’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고려 공민왕(1330~1374)부터 조선 말기 이도영(1884~1933)까지 550년간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작품 90여 점을 만나 볼 수 있다. 신사임당,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표암 강세황, 혜원 신윤복 등이 망라됐다.
이 가운데 윤기 흐르는 고양이가 요상한 표정으로 역시 방아깨비를 노려보는 진경산수 거장 정선의 소품에는 넉넉한 여유와 아취가 서려 있다. 수박 파먹는 쥐들의 얄궂은 정경이나 한여름 패랭이꽃과 오이 아래 개구리가 넙적 엎드린 모양을 담은 겸재의 또 다른 소품들은 생태 다큐를 찍듯 자연적 일상의 관찰하듯 깊은 내공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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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작 ‘과전전계’.사진제공=간송미술문화재단 |
더불어 고슴도치가 몸을 굴려 가시로 오이를 콕 찍어 서리를 하고 달아나는 홍진구의 소품도 볼수록 함함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명품이다. 노란 고양이를 희롱하는 나비의 풍경을 담은 김홍도의 ‘황묘농접’과 첫머리를 장식하는 공민왕의 양 그림, 조선 초·중기 화원들의 기품 넘치는 학, 중국 물소를 빼닮은 김식의 소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시 관계자는 “화훼영모화는 가장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그림 중 하나로 낯설고 어렵게만 여겨지는 우리 옛 그림과 친숙해 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우리 그림이 지닌 아름다움과 그림 속에 담긴 선조들의 이상과 욕망, 삶의 지혜까지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처럼 한국미술의 역사를 후손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간송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보급 문화재들이 골동품 상점에서 헐값에 거래되고 있었던 일제강점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 20대 초반에 ‘10만석꾼’이 된 간송은 우리민족 문화유산을 지켜내는 것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반출 위기에 있던 보물 제579호 괴산외사리석조부도, 국보 제72호 계미명삼존불을 비롯해 수많은 성보를 지켜냈다. 때론 일본 경매시장에 나온 우리나라 미술품이 있으면 직접 일본으로 사람을 보내 고가에 구입해 다시 국내로 가져오기도 했다. 이렇게 수집한 문화재들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 보화각을 1938년에 설립했고, 지금은 간송미술관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은 ‘삼국~조선말~근대’에 이르기까지 전 시대에 걸쳐 있으며, 서화는 물론 조각과 공예 등 거의 모든 미술 분야를 아우른다. 국보 12건, 보물 10건 등 22건의 국가 지정문화재와 뜰에 전시된 석탑, 부도, 불상 등을 소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이곳의 소장품만으로 한국미술사를 서술할 수 있으며, 이를 제외한 한국회화사는 상상할 수 없다’고 극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교신문3154호/2015년11월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