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 가을 맨드라미 / 홍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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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맨드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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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본 한미한 선비는 다만 적막할 따름이다 이따금 무료를 간 보느니 2 간 여름내 드높이 간두에 돋우었던 생각의 화염을 속으로 속으로만 낮춰 끄고 있노니 유배 나가듯 병마에 구참(久參)들 하나둘 자리 뜨는 텅 빈 가을날 |
붉은 빛의 맨드라미가 핀 것을 시인은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생각의 불꽃 같았을 것입니다. 생각의 화염(火焰)이 가장 위태롭게 불타고 있는 상태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백척간두(百尺竿頭), 그 끝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 여름을 우리는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텅 빈’ 가을날입니다. 내면의 화염을 훅 불어 끄고 적막에 잠기는 가을날입니다. 다시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음을 비워서 무욕하고 고요한 세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텅 빈 허공처럼 넓고 탁 트인 세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일은 가난하고 지체가 변변하지 못한 사람의 일은 정녕 아닐 것입니다.
[불교신문3157호/2015년11월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