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 무곡리 블루스 / 이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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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곡리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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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 엎드려 밖을 본다 솨아아 들판을 건너는 바람의 길이 보인다 산비둘기 감나무에 앉았다 가고 심심한지 한낮에도 우는 닭 그 위를 지나는 경운기 소리 멀리 버스 지나간다 남겨진 길 햇살에 더욱 하얗다 |
시인은 마음의 평평한 마루 같은 곳에 바짝 엎드려 있습니다. 바깥에는 들판이 있고, 너른 들판 위를 바람이 지나갑니다. 아마도 차고 건조한 겨울의 날이었을 것입니다. 바람은 무심한 듯 겨울의 낮 시간을 지나갑니다. 조금은 무료하고 나른한 그리하여 화평한 시간입니다. 산비둘기는 잎이 다 진 감나무 위에 내려앉았다 날아가고, 닭이 우는 소리는 낮달이 뜬 하늘 속으로 아득히 사라집니다. 경운기 소리도 매우 먼 곳으로부터 희미하게 옵니다. 그리고 저곳에 버스가 느리게 지나갑니다. 버스가 지나가고, 뒤에 남겨진 길은 햇살에 홀로 하얗게 말라갑니다. 풍경 속 존재들은 각자의 살림을 살아갑니다. 갈등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 시는 움직임을 보여주지만 그것의 소요(騷擾)를 주목하지는 않습니다. 풍경을 조용하게 응시할 뿐입니다.
[불교신문3163호/2015년12월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