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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 석불 앞 찬란한 꽃도 무심히 핀다


작성자 남수연 기자 작성일16-03-07 16:01 조회4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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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익씨 작품 ‘붓다-꽃이 피다 I’.

‘봄의 정원으로 오라 /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 이것들은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신의 16회 개인전에 부치는 글 말미를 작가는 젤랄루딘 루미의 시 ‘봄의 정원으로 오라’로 장식했다. 화폭 속 흐드러지게 핀 꽃, 그리고 그 앞에 무심히 앉아있는 부처님의 모습. 불상은 형형색색의 꽃잎으로 뒤덮인 듯하지만 흔들림 없는 석불이다. 꽃잎은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지만 무심하게 피어날 뿐이다. 함께 할 수 없지만 함께이기에 서로에게 의미를 주는 화폭은 루미의 시와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이 모두를 꿰뚫어 보는 작가의 안목에서는 깊은 수행의 흔적이 느껴진다.

3월9~15일 서울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16회 조재익 개인전 ‘문득, 꽃이 피다’는 깨어나는 계절과도 잘 어울리는 전시다. ‘옛길-꽃이 피다’ 연작의 화폭은 화사한 꽃들과 이제 막 물오른 연둣빛 잎사귀들로 가득하다. ‘옛길-은자의 오두막’ 연작에서는 더욱 짙어진 녹음과 보일 듯 말 듯 수풀에 가려져있는 숲길을 통해 그 너머에 있을 수행자의 그윽한 향기를 떠올리게 한다.

올해 전시에는 ‘붓다-꽃이 피다’ 연작이 눈길을 끈다. 어느 숲속 바위 아래, 혹은 무심히 지나가던 산길 모퉁이 바위봉우리서 불현듯 마주칠법한 석불들이 주인공이다. 아니, 그 곁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이 주인공이다. 작가의 말을 빌려보자.

“간다라불상과 불두, 고행상, 초전법륜상, 한국의 석불과 마애불 등을 반복하여 그린다. 그것들은 동백, 매화, 진달래, 야생화, 이름 모를 열대의 꽃들과 함께 찬란하다. 존재가 깨어나는 순간, 피어남의 순간을 무심하게 그린다.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평화롭게 행복하기를! 꽃처럼 피어나기를!”

누구인들 주인공 아닌 이가 없다. 무심하게 피어난 화사한 꽃과 대자비를 품었지만 묵묵한 석불상의 경계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저 이 순간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부처의 마음처럼, 꽃의 아름다움처럼 존재할 뿐이다.

중진 서양화가이지만 미얀마 수행센터에서 출가, 위빠사나 수행의 결실을 작품에 표현하기도 했다.

작가는 “개인적인 기질은 한 번도 외딴 산골이나 시골에서 산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꽃이 피어있는 언덕 길 너머 저기 어디쯤에 위치한 소박한 거처를 꿈꾼다”고 고백한다. 손끝의 기교를 배제하고 무덤덤하게 반복한 몸짓의 흔적이 가득한 화면은 그의 소박한 바람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화폭 전체에서 느껴지는 두터운 질감과 묵직한 내공은 한 길로 천착해온 작가의 오랜 세월을 말해준다.

“용해제를 사용하지 않은 끈적거리는 오일의 중량감과 저항감을 느끼며, 이런저런 색들의 혼합과 나이프와 붓의 흔적-긁기, 긋기, 쌓기, 비비기, 덧바르기, 지우기 등의 흔적이 꽃이 되거나 오두막이 되거나 탑이 되거나 붓다가 되어 가는 것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탱탱한 캔버스의 탄성을 느끼며 북을 치듯, 춤추듯, 비명 지르듯 흔적들을 화면에 남긴다. 그리고 무심하게 바라본다.”

화폭 앞에서 작가는 침묵한다. 희로애락의 온갖 번뇌를 쓸어내린 자리, 침묵하는 작가와 삼매에 든 수행자, 그리고 관객 스스로가 오버랩되는 순간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02)734-7555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334호 / 2016년 3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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